- syordan6
- 6일 전
- 2분 분량
동그라미와 네모

나에게는 조금 유별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앉는 책상의 모양을 가린다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때, 혹은 그저 멍하니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본능적으로 동그란 테이블을 찾는다. 하지만 무언가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나, 복잡한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는 반드시 네모난 책상 앞에 앉는다. 희한하게도 생각이 필요한 순간에 네모난 책상에 앉으면 사고가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반대로 전투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둥근 테이블에 앉으면 도무지 집중의 날이 서질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이것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도형이 가진 '선과 꼭지점'의 힘 때문이라 믿는다.
조각을 전공하며 오랫동안 입체를 만져온 내 눈에 사각형은 '확장적'인 동시에 '불완전한' 도형이다. 사각형의 꼭지점은 마침표가 아니다. 그것은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성질을 가진다. 마치 캔버스의 사각 프레임이 세상을 다 담지 못하고 잘라낸 단면인 것처럼, 사각형은 어딘가 열려 있고 이어져야 할 것 같은 '미완성'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네모난 사물은 커 보이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반면 동그라미는 그 자체로 완전체이다. 시작과 끝이 없는 곡선은 외부로 흩어지지 않고 내부로 수렴한다. 모난 곳이 없기에 시선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고 안으로, 또 안으로 감긴다. 그래서 원형은 사각형보다 작아 보일지언정, 단단하고 꽉 찬 '완성'의 느낌을 준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긴다. 나는 왜 그토록 불안하고 미완성인 네모난 책상에서 더 집중을 잘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불안과 긴장'이 바로 집중의 원동력이었다.
사각형의 날카로운 모서리와 직선은 시선을 가둔다. 뻗어나가려는 확장성과 그것을 끊어내는 직선의 단호함.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감이 나를 각성 상태로 만든다. "지금은 딴생각할 때가 아니야"라고 뇌를 다그치는 것만 같다.
반대로 둥근 책상은 경계가 없다. 시선이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고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색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딱 끊어내고 결론을 지어야 하는 업무에는 그 '유연함'과 '완결성'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시선을 가구가 아닌 '공간' 전체로 돌려보면 이야기는 더 확실해진다. 나는 반듯한 직육면체(큐브)로만 이루어진 공간, 소위 '박스형' 건물에 들어가면 좀처럼 오래 머물지 못한다. 아무리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해놓아도 왠지 모를 답답함과 불안감이 느껴져 금방 자리를 뜨곤 한다. 공간 속의 사각형, 특히 튀어나온 모서리(입체의 외부)는 공격적이다. 확장성을 가진 그 날카로운 모서리가 나를 베고 지나갈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안으로 들어간 모서리는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지만, 튀어나온 모서리는 공간을 좁고 예민하게 만든다. 온통 네모로만 짜인 공간은 탈출구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는 사선이 과감하게 질러져 있거나, 비정형의 건물을 좋아한다. 그곳에는 시선의 흐름이 있고, 숨통이 트이는 의외성이 있다.

현대 건축의 대부분은 효율성 때문에 네모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사무실도 온통 삭막한 직선과 꼭지점 투성이다. 모서리가 많은 입체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네모난 공간 안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네모난 공간에는 반드시 동그라미가 필요하다."
그것이 물리적인 원형 테이블이든, 부드러운 아치형의 문이든, 혹은 시선을 달래줄 식물의 유려한 곡선이든 말이다. 날카로운 직선이 주는 긴장감을 중화시켜 줄 곡선의 온기가 있어야 비로소 그 공간은 사람이 숨 쉬고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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