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syordan6
  • 6일 전
  • 2분 분량

인테리어 현관, 턱에 대한 생각



인천연수한화포레나 인테리어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을 나는 자주 떠올린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외부와의 연결은 끊어지지만, 몸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신발을 신고 있고, 외부의 공기와 먼지가 그대로 따라 들어온다. 집 안에 들어왔지만, 아직은 집 안이 아닌 시간. 그 짧은 틈이 현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관을 계획할 때마다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거실과 현관 사이의 턱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처음에는 늘 하던 방식처럼 기능을 떠올렸다. 신발을 벗는 자리, 먼지를 막는 선, 바닥을 나누는 기준. 모두 익숙하고 합리적인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그 설명들만으로는 마음이 충분히 움직이지 않았다. 도면을 보며 계속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거실과 현관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져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구분은 되어 있지만, 인식은 흐려졌다. 긴장이 남아 있어야 할 현관과 이완이 시작되는 거실이 별다른 저항 없이 섞여버리는 것 같았다. 그 흐릿함이 불편했다.

나는 공간이 애매해지는 순간을 경계한다. 특히 집에서는 더 그렇다. 밖과 안, 신발과 맨발, 긴장과 휴식은 분명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 차이가 분명할수록, 사람의 몸과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진다. 그 차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계단의 감각이 떠올랐다. 한 발을 옮길 때마다 위와 아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잠시 끊기는 느낌. 단차 그 자체보다도 단차 아래에 생기는 얇은 그림자. 그 작은 틈이 공간을 또렷하게 나누고, 몸의 리듬을 바꾸던 기억이었다.

그 감각을 현관 턱에 옮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턱 하단을 10미리 셋백했다. 눈에 띄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다. 설명하지 않으면 지나칠 만큼 조용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 조용한 변화는 공간의 인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턱은 더 이상 단순한 높이 차이가 아니었다. 거실의 덩어리와 현관의 덩어리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존재한다. 맞닿아 있지만 섞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생긴 얇은 어둠이 경계를 또렷하게 만든다.

이제 현관은 분명히 밖이다. 아직 신발을 신고 있고, 외부의 긴장이 몸에 남아 있다. 그리고 턱을 넘는 순간, 거실이 시작된다. 신발을 벗고, 어깨가 내려가고, 호흡이 바뀐다. 이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경계가 분명해지자 공간은 시원해졌다. 넓어져서가 아니라, 성격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있을 때, 사람은 긴장을 내려놓는다.

이 현관 턱은 작은 제스처에 가깝다. 하지만 집이라는 세계로 들어오기 전, 감정이 급격히 전환되는 지점을 만들어준다. 밖에서 안으로, 긴장에서 이완으로.

나는 이런 방식의 디테일을 믿는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이해하는 경계. 이 집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시작된다.





[260126]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