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yordan6
- 6일 전
- 3분 분량
공간의 근본 - 먹매김작업

나는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할 때, 유난히 시간을 들여 작업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먹매김'작업이다.
철거가 끝난 거친 콘크리트 현장. 그 정적 속에 들어서면 나는 가장 먼저 집안 구석구석에 수평과 수직 레벨을 띄운다. 거실은 물론, 주방과 작은 방, 그리고 가장 소외되기 쉬운 욕실까지. 텅 빈 공간에 붉고 푸른 레이저 선들이 정교한 그물망처럼 교차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베테랑 목공 반장님들은 보통 효율을 위해 거실의 메인 벽 정도만 기준을 잡고 작업을 시작하거나. 발주자의 특별한 지시가 없으면 관행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공사 첫날, 하루를 온전히 바쳐 집 전체에 먹매김(기준선을 긋는 레이아웃 작업)을 한다. 누군가는 "어차피 마감하면 보이지도 않을 밑작업에 왜 그렇게까지 힘을 빼냐"고 묻는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기준선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실 많이 사용하는 '수평수직레이저'은 우리가 알고있는 것 처럼 그렇게 정밀 한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공간에서 조차도 설사 레이저기계가 오차 없이 정확하다 하더라도, 기계도 사람의 성향과 습관을 따라가기도 하고, 실제로 입체의 공간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레벨기를 사용하는 작업자도 적지 않다. 그리고, 애초의 레이저 선의 굵기에 의해 아주 정밀한 작업이 불가능하다. 또, 레이저와 같이 병행해서 줄자로 치수를 측정하는데, 공간에서의 줄자를 통한 치수측정은 오로지 기준벽에서 직각일때만 유효하다. 그런데 직각을 맞추며 측정하는 것도 쉬운게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다. 중요한 것은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수평수직 레벨"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공간 측정을 할때 미리 단위로 측정하는 것은 정말 미리 단위로 공간을 계획하기 위한다기 보다 미리 단위로 공간을 계획해야 위에서 말한 오차를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테리어의 마감 중 하나인 바닥재와 가구의 완벽한 마감은 바로 이 선 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공사에는 흔들리지 않는 ‘절대 기준’이 필요하다. 이후에 들어오는 모든 벽체와 가구, 바닥재는 그 기준선에 맞춰 하나하나 쌓아 올려지기 때문이다. 만약 시작 단계에서 미세하게 틀어진 기존 벽체의 오차를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비극은 공사가 끝날 무렵,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터져 나온다. 반듯하게 깔려오던 마루나 타일이 틀어진 벽을 만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대각선으로 깎아내야 하는 ‘사선치기’ 상황이 온다. 운이 나쁘면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로 얇고 비스듬한 조각(쪽)이 벽면을 따라 길게 남게 된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집 전체의 중심은 반듯한데 벽만 미세하게 틀어져 있다면, 그 벽에 붙는 가구는 바닥의 라인과 어긋나 삐딱하게 놓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 난감한 마감의 비극을 막기 위해, 나는 구조 공사 전 하루를 꼬박 바쳐 공간 전체의 직각을 잡아주는 ‘퍼즐 맞추기’에 매달린다.
집의 ‘절대 기준선’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현관 방화문, 거실의 큰 창호, 혹은 가장 긴 메인 벽체.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할까?
이론적으론 다 맞을 것 같지만 실전은 다르다. 건물 자체가 올라갈 때부터 정밀도가 완벽하지 않고, 창호조차 완벽하지 않은 외벽에 맞춰 시공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화문과 거실 창호를 찍어보면 5~10mm의 오차는 예사로 발생한다. 이때 나는 아주 역설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바로 집에서 가장 작은 공간인 "욕실"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거대한 집의 기준이 고작 작은 욕실이라니,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는 분명하다. 오차가 있는 방화문을 기준으로 라인을 잡고 욕실까지 밀고 들어가다 보면, 누적된 오차 때문에 욕실 내부가 무리하게 좁아지거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거실에서부터 시원하게 뻗어 오던 바닥재의 라인(매지)이 욕실 문턱 앞에서 갑자기 툭 끊기거나 휘어지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눈엣가시’다.
상업 공간은 오히려 쉽다. 아무것도 없는 빈 도화지에 우리가 계획한 선을 그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집’은 다르다. 이미 세워져 있는 많은 벽체가 제각각의 각도로 서 있는 복잡한 입체 퍼즐이다. 그래서 집에서의 먹매김은 훨씬 신중해야 하고, 어쩌면 고통스러울 만큼 정교해야 한다. 내가 겪은 바로는 많은 현장에서 이 과정을 소홀히 한다. 티가 잘 나지 않는 작업이고,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집안의 모든 공간이 하나의 통일된 질서 아래 정돈되어야 비로소 ‘편안한 공간’이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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