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yordan6
-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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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면에 치수를 넣지 않는 이유

나는 도면에 치수를 거의 넣지 않는다.
이 말을 하면 가끔 의아한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도면이라는 것은 원래 치수가 있어야 하고, 정확해야 하고, 숫자가 많을수록 친절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런데 인테리어 현장에서의 도면은, 물건을 만들거나 새로운 건물을 짓는 도면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없는 공간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철저히 치수에 의해 움직인다. 가구 하나를 만들더라도 모든 길이와 각도가 정확히 정해져 있어야 하고, 그 숫자들이 곧 결과물이 된다. 물론 그 안에서도 일부 여지는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치수가 중심이 된다. 반면 인테리어와 리모델링은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전제로 한다. 벽은 이미 서 있고, 바닥은 이미 기울어져 있으며, 직각이라고 믿고 싶은 모서리들은 대부분 직각이 아니다. 이 공간을 아무리 정밀하게 실측하더라도, 현장을 완벽하게 숫자로 옮겨 적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도면은 자랑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설계자와 작업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사용하는 소통의 문서다. 내가 머릿속에 그린 계획이 현장에서 오류 없이 구현되기 위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도에 가깝다. 도면의 핵심은 예쁘게 보이는 것도, 숫자가 빽빽한 것도 아니다. 현장에서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다. 조명 위치나 문의 위치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도면들은 하나의 요소에 대해 사방으로 치수를 표기한다. 벽에서 몇 밀리, 다른 벽에서 몇 밀리, 또 다른 요소에서 몇 밀리. 겉보기에는 굉장히 친절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작업자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인테리어 현장에서는 그 치수들 중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다 조금씩 틀리고, 그중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결국 작업자는 도면을 내려놓고 전화를 걸게 된다.
초보자일수록 도면에 의미없는 치수가 많다. 그리고 치수가 많은 도면은 시공을 위한 도면이라기보다는, 면적을 계산하기 위한 도면에 가깝다. 시공자는 숫자를 보고 계산을 하지만, 설계자가 절대기준을 세워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도면에 치수를 넣을 때 기준이 되는 방향 한두 개만 남긴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기준선에 맞춰 계산하도록 여지를 둔다. 기준이 명확하면, 숫자가 없어도 구조물은 만들어진다. 오히려 숫자가 많을수록 기준은 흐려진다.
치수 표기 방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든 치수를 ‘1100’처럼 단정적인 숫자로 적지 않는다. 인테리어 현장에서 정말로 절대값이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절대치수’가 필요한 경우에만 숫자를 명확히 표기하고, 그 옆에 반드시 절대치수임을 함께 적는다. 그 외에는 ‘1100 이상 준수’, ‘1100 이하 준수’(오차범위 50) 처럼 범위를 열어둔다. 글자가 없는 치수에는 가변치수임을 명시하고, 반드시 현장에서 확인하라는 문구를 남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테리어 현장의 모든 벽은 다르고, 모든 공간은 조금씩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기준점이 더 중요하다. 그 기준에 맞춰 구조물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공간이 무리 없이 정리된다. 치수가 너무 많은 도면은 결국 현장에서 계속 질문을 낳는다. 전화가 잦아지고, 판단은 늦어지고, 흐름은 끊긴다. 반대로 기준이 분명한 도면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전달된다. 작업자는 도면을 보며 고민하지 않고, 기준선에 맞춰 손을 움직인다.
내가 도면에 치수를 넣지 않는 이유는, 정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테리어라는 불완전한 공간의 성격을 인정하기 때문에, 숫자보다 기준을 남긴다. 도면은 완성도를 증명하는 종이가 아니라, 현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기준이라 생각한다.
[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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