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yordan6
- 11월 11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1월 13일
공간은 크거나 혹은 넓다고 무조건 좋은걸까?

춘천에 위치한 레고랜드는 가족과 함께 서너번 정도 방문 한적이 있다. 이곳에 방문했을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나의 감정 어딘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많아서일까, 구조물이 인위적이라서일까, 아니면 공간 배치의 문제일까.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한 데 있었다.
"그 곳에는 산이 없었다."
자연의 곡선도 없었고, 부드러운 구릉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야를 차단해주는 ‘벽’이 없었다.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은 끝없이 확장되기보다, 때로는 가려지고 멈추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멈춤은 풍경에 리듬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흔히 ‘넓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탁 트인 공간, 시야가 확 열리는 개방감. 하지만 그 너비가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되지 않으면, 공간은 곧 '난잡해진다'. 이것은 레고랜드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레고랜드는 대규모 평지 위에 계획된 테마파크다. 그러나 그 넓은 공간 어디에도 시선을 정리해주는 요소가 없다. 시야의 끝이 너무 멀다 보니, 중심이 없고, 몰입도 떨어진다. 풍경의 완급, 리듬감, 여백의 미. 그런 것들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방 하나에 가구를 전부 밀어 넣고는 어디 앉을 곳조차 없는 상황처럼 말이다.
이런 점은 특정 지역의 도시 경관과도 닮아 있다. 예를 들어, 지구인garden 작업실이 있는 김포를 생각해보자. 김포는 넓은 평지(평야) 위에 도시가 펼쳐져 있다. 산이 없으니 시야는 끝없이 열리지만, 동시에 복잡해 보인다. 건물, 간판, 도로, 차량의 흐름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며 시각적으로 피로하다. ‘이게 도시지’ 하고 넘기기엔 뭔가 답답하고, 이상하게 어지럽다. 넓은 시야가 때론 질서를 해친다는 걸 김포는 잘 보여준다. 마치 정리 안 된 엑셀 시트처럼. 반대로 가평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은 시야를 조절하고 공간을 감싸며, 마치 커다란 품처럼 사람을 안아준다. 그래서 그곳은 청량하고 아늑하다. 자연이 공간을 정돈해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품 안에서 괜히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진다. 아무도 부르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시간 말이다.
에버랜드는 또 다른 예다. 구릉과 산지 위에 조성된 그 공간은 다양한 ‘높낮이’를 통해 장면을 전환시킨다. 시야는 계속 움직이고, 가끔은 막히고, 그러다 갑자기 열린다. 이는 마치 영화의 컷 전환처럼 공간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산과 숲이 ‘자연스러운 배경’이자 동시에 ‘시선의 차단막’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에버랜드는 걷는 것만으로도 리듬이 생기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공간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가림막’을 더 필요로 한다."
이는 단순히 놀이공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공간을 기획할 때, 얼마나 넓게 만들 것인가보다, 그 넓이를 ‘어떻게 끊고, 어떻게 쌓고, 어디에서 멈추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레고랜드는 그 중요한 한 수를 놓쳤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활발히 펼쳐져야 할 곳에, 너무 많은 정보와 너무 적은 구조가 주어졌다. 그래서 공간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놀이터로서의 기능에는 미묘한 피로감을 준다. 그건 어쩌면 ‘산’이 없는 풍경의 공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레고랜드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공간을 기획하거나 소비할 때, 그 너비와 리듬, 시선의 완급에 대해 조금 더 섬세하게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다. 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공간의 틀을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벽이다. 때로는 그 벽 하나로, 우리는 ‘안정감’이라는 아주 인간적인 감정을 얻는다. 그러니 그 벽을 너무 쉽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실내 공간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실내에서의 넓은 공간은 분명 시원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그 너비가 설계자의 의도 없이 방치되면, 우리는 방향을 잃고 동선에 혼란을 느낀다. 천장이 높고 벽이 멀면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낼 수 있지만, 거기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른다면 공허함만 커진다. 오히려 적절한 파티션, 가구 배치, 조명의 레이어들이 작은 '산'이 되어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중심을 잡고, 마음을 둔다. 실내에서도 넓이는 질서와 조화를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아름답다.
[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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